
1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퇴직 전날 혼자 극장을 찾았습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기대했는데, 상영 내내 주먹을 쥐고 있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분노와 허탈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 : 12.12 군사반란과 하나회, 그날 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영화의 배경은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격된 직후입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사라진 권력 공백 상태, 즉 정치학에서 말하는 레임덕(Lame Duck) 이상의 공백기가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레임덕이란 최고 권력자가 임기 말이나 유고 상태에서 통치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그 공백을 노린 세력이 바로 '하나회'였습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를 중심으로 결성된 군 내 사조직입니다. 주로 경상도 출신 장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가입 시 절대 복종을 서약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서로를 '형님'이라는 암호로 부르며 결속을 다졌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닌 군 내 쿠데타 세력의 기반이었습니다. 제가 군 복무를 할 때만 해도 수직 명령 체계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는데, 그런 군 문화 안에서 이런 사조직이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이 정말 소름 돋았습니다.
전두광(영화 속 전두환을 모델로 한 인물)은 합동수사본부장 자리를 이용해 통신 정보를 장악하고, 반란 당일 계엄사령관 정상호 총장을 강제 연행하는 작전을 감행합니다. 계엄령(戒嚴令)이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대통령이 선포하는 비상 통치 조치로, 군이 민간 행정과 사법권까지 장악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한입니다. 이 계엄 체계를 역으로 활용해 정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점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날 밤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박정희 피격 직후 비상계엄 선포 및 정승화 계엄사령관 임명
- 전두광 측이 대통령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 연행 강행
- 수경사, 특전사, 헌병감을 술자리로 유인해 지휘 공백 유도
- 이태신 수경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저항 세력의 대응
- 행주대교 차단, 병력 교착, 새벽 무렵 반란 세력의 실질적 장악 완료
정승화 총장 연행은 반란군이 대통령 재가조차 사후에 받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건을 쿠데타(Coup d'état), 즉 무력을 이용해 정부를 강제로 전복하는 행위로 규정하는 핵심 근거입니다 (출처: 국가기록원).
군복을 입어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분노와 명예의 문제
저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현역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태신 장군의 선택이 남달리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가 고집스럽게 저항할수록, 저는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실제로 저 상황이었다면,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군인이 주춤했을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군 조직에서 명령 불복종(Insubordination)이란 단순한 규율 위반이 아닙니다. 군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고, 군인으로서의 모든 경력이 끊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구조 안에서 '이 명령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저항하는 건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현실에서는 직업과 신념,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시대 군 문화는 더욱 그랬습니다. 뇌가 정지되는 수준의 수직 명령 체계가 잡혀 있었다는 건, 제가 복무할 때도 여전히 그 잔재를 느꼈기에 더 실감이 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단순히 '왜 저항하지 않았냐'고 비판하는 시선은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개인의 용기 부족이 아니라,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 자체였습니다. 하나회처럼 사적 충성 서약으로 묶인 사조직이 군 전체의 지휘 체계를 흔들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구조적 실패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사건은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의 직접적 도화선이 됩니다. 5·18 민주화운동 역시 이 군사반란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그 점에서 영화 '서울의 봄'은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라, 민주주의 헌정 질서(Constitutional Order)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헌정 질서란 헌법에 기반한 국가 권력의 정당한 행사 체계를 의미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분노했던 장면은 마지막이었습니다. 반란에 성공한 이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는 그 장면. 그 사진은 오늘날 우리에게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치욕의 증거로 읽힙니다. 정당성을 잃은 권력은 결국 역사의 단죄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영화가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말하는 지점입니다.
더 황당한 건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와중에 현실에서 또 한 번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민간인으로서 어떤 합당한 사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시대가 지나도 저 시대의 사고방식이 반복된다는 게, 영화보다 더 불편한 현실이었습니다.
1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극장을 나서면서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어떤 유혹 앞에서도 부끄러운 사진을 남기는 사람은 되지 말자.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는지가, 결국 그 사람의 마지막 기록이 된다는 것을 이 영화가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혼자 보시길 권합니다. 혼자여야 더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