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영화를 굳이 피해 다닌다는 분들, 저도 그 마음을 압니다. 특별히 나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운 게 싫어서 안 본다는 그 마음. 저도 쉰들러 리스트를 30년 가까이 피해왔다가 결국 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가슴 먹먹한 전쟁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구원이 어떻게 같은 뿌리에서 자라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쉰들러 시스트> 배우의 재발견, 리암 니슨이 테이큰보다 먼저였다는 사실
제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리암 니슨을 테이큰 시리즈의 액션 배우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쉰들러 리스트가 1993년 작품이라는 걸 알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 영화로 세계적인 명배우 반열에 올라 있었던 것입니다. 저로서는 배우에 대한 인식이 뒤집힌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쉰들러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통상적인 전쟁 영화가 취하는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와 완전히 다른 출발점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어떤 인물의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결정하는 틀로,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는 피해자인 유대인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가해자 측 독일인 사업가를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군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돈 냄새를 맡고 폴란드로 건너온 자본가라는 설정. 이 제3의 시점 덕분에 전쟁의 참상이 오히려 더 낯설고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학살이기 때문에, 시청자 역시 처음엔 일정한 거리를 두다가 점점 그 잔혹함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구조입니다.
또 회계사 이치아크 스테른이라는 인물이 영화 내내 쉰들러와 함께 축을 이룬다는 점도 제겐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테른은 쉰들러의 본심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인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고용주와 직원이 아니라 서로를 견제하고 변화시키는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 주목할 만한 구조적 장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리스트(명단)라는 소재가 살생부에서 생존자 명단으로 의미가 역전되는 구조
- 가해자 시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비전형적 서사 방식
- 스테른이라는 내부 감시자를 통해 주인공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장치
- 아몬 괴트라는 극단적 빌런과의 대비를 통해 쉰들러의 행동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구성
아몬 괴트가 등장한 순간, 영화가 달라졌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지금부터가 진짜구나"라는 감각이 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몬 괴트(Amon Göth)라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입니다. 사이코패시(psychopathy), 즉 타인의 감정과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심리적 상태를 가진 인물의 전형을 이 영화만큼 섬뜩하게 구현한 작품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처음 등장할 때 아무것도 아닌 날씨 이야기를 꺼냅니다. 눈앞에 폐허가 된 마을과 굶주린 유대인들이 있는데, 그저 "날씨가 춥다"는 말 한마디. 이 한 줄의 대사가 캐릭터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공사장에서 항의하는 여성 유대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총살하고, 같은 내용을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장면은 그의 잔혹함이 충동이 아닌 시스템화된 폭력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쉰들러의 행동이 영웅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절반은 아몬 괴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틱 아이러니(dramatic irony)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말합니다. 아몬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쉰들러가 그와 술을 마시고, 그를 설득하고, 그에게 뇌물을 건네는 장면들을 보면, 평범한 대화 장면 하나하나가 서스펜스로 바뀝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쉰들러가 아몬에게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을 때 죽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권력"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쉰들러가 얼마나 정밀하게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스스로도 어느 순간부터 진심을 담아 그 말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읽힙니다. 제가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바로 이런 장면들 때문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즉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량 학살의 역사적 규모와 관련해 출처: 야드 바셈(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추모 기관)에 따르면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숫자를 알고 영화를 보면, 쉰들러 리스트에 올라간 1,100여 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압도적이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작은 숫자인지를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흑백 영상으로 선택한 연출 결정도 되짚어볼 만합니다. 영화적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의 배치와 구성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흑백이라는 선택은 단순히 시대적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적 거리를 좁히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컬러가 제거된 화면은 관객이 "이건 그 시대의 이야기"라는 안전한 거리감을 갖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스필버그는 이 연출 방식의 효과에 대해 여러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한 바 있으며,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출처: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
마지막 장면에서 쉰들러가 "이 핀 하나면 한 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라며 오열하는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흔들립니다. 그는 1,100명을 구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탐욕으로 시작해 숭고함으로 끝난 그 여정이,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 영화를 피해 다닌다면, 쉰들러 리스트만큼은 한 번쯤 마주할 가치가 있습니다. 불편하고 무겁지만, 그 무게가 오래 남는다는 게 오히려 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흑백 화면으로 3시간이 넘는 영화지만, 끝나고 나서 왜 이걸 이제서야 봤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