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보위부 요원이 찬양 부흥회를 직접 열어야 한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설마 진짜로 있었던 일이냐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영화 신의 악단의 출발점이고, 보다 보면 그 황당함이 점점 감동으로 바뀌는 게 느껴집니다.
OST가 먼저 꽂혔던 영화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는 솔직히 북한 소재 영화라는 점에서 약간 무겁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보고 나서 가장 먼저 꺼낸 말이 "노래 너무 좋은데?"였습니다. 여자친구도 똑같은 반응이었고, 극장을 나오면서 둘 다 OST 검색부터 했습니다.
신의 악단의 OST는 복음성가(Gospel Music) 장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음성가란 기독교 신앙을 주제로 한 음악 장르로, 일반적으로 찬송가보다 리듬감이 강하고 감정 표현이 직접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찬양이라는 형식이지만 일반 팝처럼 들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곡들이 많았고, 저는 이 노래들이 어색하기는커녕 플레이리스트에 바로 추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록곡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곡들을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은혜 — 영화 초반에 처음 흘러나와 강렬하게 박히는 곡. 가사 자체가 단순하면서도 묵직합니다.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 중반 감정선이 올라오는 구간에서 터지는 곡입니다.
- 광야를 지나며 — 저와 여자친구 모두 이 영화 최고의 OST로 꼽은 곡입니다.
이 중에서 광야를 지나며는 2AM 출신 정진운이 주 보컬로 참여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부터 2AM을 좋아했던 터라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알아챘는데, 가수는 가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찬송가임에도 불구하고 발성(Vocal Technique)이 워낙 탄탄하다 보니 감정이 과하지 않게 딱 필요한 만큼만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발성이란 가수가 목소리를 내는 방식과 호흡 조절 능력을 의미하는데, 훈련된 발성일수록 감정 표현이 안정적이고 청자에게 더 깊이 전달됩니다.
반면 박시후 배우의 연기는 노래가 워낙 좋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북한 사투리 억양과 말투를 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영화 중반쯤 되면 OST에 더 집중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이고, 몰입도를 해친다고까지 볼 수는 없습니다.
실화라서 더 묵직했던 이야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실제 사건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어느 북한이탈주민의 실화를 바탕으로 적절하게 각색되었다. 실제로 북한은 해외에 가짜 교회를 세우거나 찬양단을 운영하며 기부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외화벌이를 한 사례도 잇다고 합니다. 이런 실화 바탕의 작품은 아무리 못 만들어도 보는 고통이 없다는 게 제 지론인데, 신의 악단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픽션이라면 "설마 이런 일이"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완전히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가짜로 시작된 신앙이 진심으로 바뀌어 가는 인물들의 내면 변화였습니다. 가짜 찬양단원이 되어 성경을 외우고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신앙심이 점차 생겼습니다. 사실 저도 모태신앙(Born-Again Faith와는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종교 환경에 노출된 것)으로 중학교 때까지는 종교 생활을 빠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삶의 우선순위가 수능을 위해 달리는 일반적인 한국 수험생들과 똑같아지고 직장인 생활을 하며 신앙이라는 자리는 저에게서는 멀어졌습니다.지금은 정말 힘들 때만 반사적으로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찾는 수준이 되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저에게도 이러한 신앙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의 힘, 북한의 체제도 변화되나
탈북자들의 증언을 분석한 기록에 따르면, 북한에서 종교를 감시하거나 위장 잠입한 요원 중 일부가 실제로 신앙을 갖게 되거나 탈북을 결심하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오픈도어즈). 이 사실이 영화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또한 북한의 종교 탄압 수위는 국제사회에서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Commission of Inquiry) 보고서에서도 종교의 자유 침해가 반인도적 범죄 수준으로 분류된 바 있습니다(출처: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여기서 COI란 유엔이 특정 국가의 인권 침해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하는 독립적 조사위원회를 의미합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찬양을 부르는 장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 더 실감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인 신앙은 차단하려 해도, 인간 내면에서 무언가를 믿으려는 본능은 쉽게 지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도와 이념이 오랜 역사에서 축적된 신앙의 힘을 완전히 덮을 수는 없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신의 악단은 12월 31일 극장 개봉작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최초의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이미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아빠는 딸을 연출한 김영협 감독과 7번 방의 선물로 천만 관객을 이끈 김왕성 작가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갖고 보러 갔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OST 때문에 보러 가도 충분하고, 실화를 쫓다 보면 영화 그 이상의 것을 얻어 나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