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드라 블록, 채닝 테이텀, 다니엘 레드클리프, 여기에 브래드 피트까지 카메오로 등판한 2022년 어드벤처 코미디 영화 <로스트 시티>. 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솔직히 "이 캐스팅으로 이게 최선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보물찾기 클리셰가 가득한 B급 정글 어드벤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조용히 박혀 있는 이야기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납치로 시작된 이야기, 장르의 공식은 익숙했지만
이 영화가 어떤 장르인지 파악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납치되고, 헛된 미남이 구하러 달려가고, 악당은 보물을 탐하는 억만장자. 전형적인 로맨틱 어드벤처 공식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로맨싱 스톤>(Romancing the Stone, 1984)을 떠올렸습니다. 여기서 <로맨싱 스톤>이란 1984년 작가 여성이 정글에서 낯선 남성과 함께 보물을 찾아가는 어드벤처 코미디로, <로스트 시티>가 정확하게 이 공식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로레타 세이지(산드라 블록 분)는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함께 연구했던 고대 문명을 배경으로 통속 로맨스 소설을 써왔습니다. 그녀가 출판 기념회 직후 억만장자 애비게일 페어팩스(다니엘 레드클리프 분)에게 납치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페어팩스는 그녀의 소설 속 배경이 실제 화산섬에 묻힌 '불의 왕관'의 위치를 암시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죠.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제가 느낀 건 "예상 가능한 전개"였습니다. 비슷한 구조의 영화를 많이 본 분들이라면 스토리의 흐름을 이미 그려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예상 가능함 너머에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 작가에게 진짜 모험이 생겼을 때, 그녀의 소설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정글생존의 리얼리티, 허울뿐인 커버 모델의 민낯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시퀀스는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전문 구출 전문가 잭 트레이너가 허무하게 퇴장하는 장면 직후입니다. 영화 홍보에서도 크게 내세웠던 인물인데, 막상 영화 안에서는 허당처럼 비치던 앨런(채닝 테이텀 분)이 홀로 로레타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진흙탕을 구르고, 몸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고, 화산 폭발이 임박한 섬에서 무장 용병들을 피해 달아나는 이 시퀀스는 단순한 액션이 아닙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장센이란 카메라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동선, 조명, 세트, 의상의 배치를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영화 연출 방법론인데, 니 형제 감독은 로레타의 반짝이 분홍 점프수트라는 시각적 대비를 정글의 진흙과 충돌시켜 "가짜 세계의 옷을 입은 채 진짜 위기를 맞은 사람"이라는 상황을 한 컷에 담아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묘하게 몰입했던 이유가 바로 이 비주얼 대비 때문이었습니다.
앨런이라는 인물도 다시 보게 됩니다. 채닝 테이텀이 연기하는 이 남자는 소설 표지 모델로 유명하지만 그게 전부인 사람처럼 소비됩니다. 하지만 정글이라는 극한의 환경은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거리를 잔혹하게 좁혀버리죠. 잘 차려입고 포즈만 취하던 남자가 진짜 위협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는 구조는, 비록 코믹한 톤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꽤 냉정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 분홍 점프수트 vs 정글 진흙 — 시각적 대비로 전달하는 캐릭터의 현실 직면
- 잭 트레이너의 조기 퇴장 —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서사적 장치
- 앨런의 정글 생존 — '이미지 인간'에서 '실체 인간'으로의 전환점
보물탐색의 끝에서 발견한 것, 불의 왕관의 반전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결말 직전, 마침내 고대 신전 무덤 속에서 '불의 왕관'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페어팩스가 그토록 갈망하던 보물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왕이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손수 만든 붉은 조개껍데기 왕관이었습니다. 억만장자의 욕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죠.
이 반전은 고고학(archaeology)적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읽힙니다. 고고학이란 유물과 유적을 통해 과거 인류의 삶과 문화를 복원하는 학문인데, 이 영화는 그 유물의 의미가 자본가의 소장 가치가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사랑에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페어팩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말이지만, 로레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녀 역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소설을 써왔으니까요. 제 경험상 이런 감정적 공명은 화려한 액션 스펙터클보다 훨씬 오래 남습니다.
영화가 거둔 또 하나의 성취는 이 보물의 반전이 로레타의 창작 원천과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판타지 로맨스를 쓰던 작가가 실제 모험을 겪고, 그 모험의 끝에서 발견한 것이 다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 즉 사랑과 상실이라는 점은 꽤 일관된 메시지를 만들어냅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상상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얘기를 영화 전체가 몸으로 보여주는 셈이죠. <로스트 시티> 공식 정보는 출처: Rotten Tomatoes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니 형제 감독의 연출, 그리고 이 영화가 남긴 아쉬움
아론 니·애덤 니 감독의 연출은 분명 영리합니다. 위트 있는 대사 호흡, 화려한 의상 미장센, 파이너 토프락의 음악 스코어가 조화롭게 맞물리면서 영화는 내내 리듬감을 잃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이 영화가 "잘 만든 팝콘 무비"의 조건은 충실히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산드라 블록과 채닝 테이텀, 다니엘 레드클리프, 그리고 브래드 피트까지 이 캐스팅이면 좀 더 날카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 어드벤처(romantic comedy adventure)라는 장르는, 서사의 갈등 구조와 유머 코드를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고난도 장르인데, 이 영화는 전반부의 날 선 긴장감을 후반부에서 다소 편하게 해소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말부에서 두 사람이 해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예쁘지만, 전반부 내내 쌓아온 거대 자본 카르텔의 위협과 지식인의 고독이 그 춤 한 번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적잖이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이 점은 지적된 바 있습니다. 출처: RogerEbert.com의 리뷰에서도 "유쾌한 오락이지만 기대 이상을 주지는 않는다"고 평가했죠. 제가 느낀 아쉬움과 정확히 겹치는 지점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판타지는 책상 앞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직접 몸을 던진 경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영화 자체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포터가 "플랫폼 9와 4분의 3"이라는 설정으로 일상의 공간에 판타지를 심었듯, <로스트 시티>는 작가가 자신이 쓴 세계를 직접 살아내면서 비로소 진짜 이야기를 찾는다는 구조를 택합니다. 이 부분만큼은 꽤 솔직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로스트 시티, 가족이랑 같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자극적인 폭력이나 선정성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용병들과의 추격전, 무기 사용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미리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코믹한 톤이 강해서 중학생 이상 가족이라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Q. 브래드 피트가 주연인가요? 출연 분량이 얼마나 되나요?
A. 브래드 피트는 주연이 아닌 깜짝 카메오 수준의 출연입니다. 구출 전문가 잭 트레이너 역으로 등장하지만, 극 중반 허무하게 퇴장합니다. 오히려 이 퇴장이 영화의 서사적 반전 장치로 활용됩니다. 브래드 피트 목적으로 관람하신다면 기대치를 낮추시는 편이 좋습니다.
Q. 불의 왕관이 결국 뭔지 스포 없이 알 수 있나요?
A. 결말 반전이 핵심이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억만장자가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형태라는 점만 힌트로 드릴 수 있습니다. 보물이 가진 금전적 가치보다 인간적 의미에 집중한 결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직접 확인하시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올 장면입니다.
Q. 로맨틱한 영화인가요, 아니면 액션이 더 강한 편인가요?
A. 로맨스와 액션 코미디가 비슷하게 섞여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기보다는 두 요소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구조입니다. 진지한 로맨스를 기대하기보다는 두 주인공이 티키타카하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케미 위주로 즐기시는 편이 만족도가 높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로스트 시티>는 팝콘 무비로서의 기능은 충실히 해냅니다. 산드라 블록과 채닝 테이텀의 케미, 니 형제 감독의 리듬감 있는 연출, 그리고 예상을 살짝 비틀어주는 보물의 반전까지, 2시간을 흘려보내기에 무리 없는 영화입니다.
다만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맴도는 질문은 영화의 완성도보다 그 안의 메시지 쪽입니다. 판타지는 경험에서 나온다. 이 단순한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화려한 캐스팅과 흥행 수치 너머로 그 질문 하나를 건져가고 싶은 분들께는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스토리의 밀도나 완성도를 기대하신다면 기대치를 미리 조정해두시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