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잘 만든 첩보 스릴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암살 작전의 긴장감, 에릭 바나의 눈빛, 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질감 같은 것들에 먼저 눈이 갔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로 보고 나서야 제가 놓쳤던 걸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복수극이 아니었습니다. 복수가 어떻게 사람을 부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을 배경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 비극의 이면을 어떻게 해부했는지 제가 직접 느낀 그대로 정리해봤습니다.
뮌헨 올림픽 테러와 영화가 선택한 시작점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선수촌.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블랙 셉템버(Black September), 즉 '검은 9월단'의 요원들이 담을 넘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합니다. 이들은 선수 2명을 현장에서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은 뒤 아랍 국가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포로 100여 명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협상이 결렬되고 서독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작전은 참담하게 실패했고 인질로 잡혔던 이스라엘 선수 9명 전원과 독일 경찰 1명, 테러범 수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역사상 최악의 올림픽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출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영화 <뮌헨>(Munich, 2005)은 이 비극적 사건을 단 15분 만에 끝냅니다. 처음에는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건 그 사건 자체의 재현이었는데, 스필버그 감독은 그것을 배경으로만 남겨두고 카메라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거든요. 그 이후부터가 진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비밀 암살 작전인 '신의 분노 작전(Operation Wrath of God)'을 가동하고, 요원 아브너(에릭 바나 분)를 수장으로 하는 비밀 팀이 꾸려집니다. 여기서 모사드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 수집 및 비밀 공작을 담당하는 국가 정보기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첩보 조직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들의 임무는 테러를 기획한 배후 인물 11명을 유럽 전역에서 찾아내 한 명씩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작전은 정의입니까, 아니면 국가가 포장한 또 다른 살인입니까? 영화는 그 답을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요원들이 한 명씩 표적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그 질문이 점점 더 무겁게 쌓여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선택한 미장센의 언어
제가 두 번째 관람에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촬영 방식이었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몇 가지 반복적인 시각 언어를 사용합니다. 백미러나 유리창을 통해 앞과 뒤, 안과 밖을 동시에 보여주는 쇼트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이 기법이란 단순히 공간을 두 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추적하는 자와 추적당하는 자가 사실은 동일한 구조 안에 놓여 있다는 걸 시각적으로 말하는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정의고 그들은 악"이라는 이분법 자체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카메라 언어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음악도 그냥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 '별은 빛나건만', 바흐의 바이올린 샤콘,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장면마다 스쳐지나갑니다. 각 연주자들이 따로따로 연습하는 소리가 섞이며 불협화음(dissonance)을 만드는 시퀀스가 있는데, 이 불협화음이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음들이 동시에 울릴 때 발생하는 음악적 긴장감을 말합니다. 이게 암살조가 작전을 수행하러 이동하는 장면 위에 깔리는 구조는, 유럽의 고전음악적 문명 위에서 벌어지는 냉전 시대의 비밀 폭력이라는 아이러니를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반복해서 들어봤는데, 음악만으로도 서늘한 긴장감이 충분히 전달되더군요.
- 백미러·유리 반사 쇼트: 추적자와 피추적자의 동등한 위치를 암시하는 시각 언어
- 길게 늘어진 그림자: 죽음과 불길함을 예고하는 스필버그 고유의 조형 문법
- 엘리베이터 전선의 교수형 연상: 암살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도덕적 질문을 이미지로 던짐
- 유럽 클래식 음악의 불협화음: 냉전 시대의 폭력과 문명의 충돌을 청각적으로 표현
복수의 순환과 국가 폭력의 끝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테네의 안전가옥에서 이스라엘 암살조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한 지붕 아래 머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불편하고 가장 정직한 순간입니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정치를 논하고 각자의 대의를 이야기합니다. 카메라는 어느 쪽도 악인으로 단정 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 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 장면 하나가 "우리는 정의고 그들은 악"이라는 전쟁 서사의 가장 오래된 거짓말을 조용히 찢어버립니다.
작전이 진행될수록 아브너의 팀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동료들이 하나둘 의문사하거나 피폐해지고, 아브너 본인도 하나를 제거하면 그 자리에 더 강경한 인물이 들어앉는 무한 폭력의 사이클(cycle of violence), 즉 한쪽의 복수가 상대방의 새로운 복수를 낳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연쇄 구조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이 상태가 된 아브너에게 저는 완전히 공명했습니다. 체제가 주입한 명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판단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얼마나 가혹한 고독을 동반하는지를 이 영화는 정확하게 그려냅니다(출처: BAFTA 2006년 작품상 후보 선정 자료).
그리고 영화의 결말. 모든 것이 끝나고 뉴욕으로 건너간 아브너에게 담당관 에프라임(제프리 러시 분)이 찾아옵니다. 아브너는 그에게 집으로 와서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합니다. 에프라임은 거절합니다. 그 순간, 아브너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국가가 영웅의 훈장을 내밀어도, 다시 살인 기계로 복귀하는 길을 거부한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소모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유일하게 남은 인간성의 영역이었으니까요.
원작 소설(조지 조나스의 1984년 논픽션 '복수')에서는 국가가 주인공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협박을 가하며 끝없는 싸움 속으로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원작의 결말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아브너에게 선택권을 줬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마지막에 멀리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쌍둥이 빌딩을 비춥니다. 2001년 9·11 테러로 사라지게 될 그 건물. 이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라 2005년 당시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미국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였다는 걸, 저는 나중에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복수는 끊어야 합니다. 단번에.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뮌헨은 실화를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한 건가요?
A. 영화는 조지 조나스의 논픽션 소설 '복수(Vengeance)'를 원작으로 하며, 1972년 뮌헨 올림픽 테러와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작전을 바탕으로 합니다. 다만 스필버그 감독은 원작의 결말을 의도적으로 수정했고, 이스라엘 정부는 '신의 분노 작전'의 세부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일부 장면의 사실 여부는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극적 재구성인지 경계를 생각하며 보면 영화가 더 흥미로워집니다.
Q.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 검은 9월단이 정확히 어떤 조직인가요?
A. 블랙 셉템버(Black September), 즉 검은 9월단은 1970년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이 축출된 이른바 '검은 9월' 사건 이후 결성된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입니다.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연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식 관계는 부인되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선수촌 침입 사건이 이 조직의 가장 잘 알려진 공격입니다. 조직의 이름과 배경을 알고 나면 이들이 왜 이 시점에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지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Q. 영화 결말에 세계무역센터가 등장하는 이유가 뭔가요?
A. 마지막 장면에서 멀리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보입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로 사라지게 될 건물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복수의 연쇄가 끝내 어디로 귀결되는지를 암시하는 도식적 상징주의 프레임입니다. 2005년 개봉 당시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시점에, 스필버그 감독이 미국을 포함한 현대 국가 권력 전체에 던진 경고였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다만 이 장치가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Q. 원작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A. 원작에서 주인공은 국가의 협박으로 결국 다시 싸움 속으로 돌아갑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말입니다. 반면 스필버그 감독은 주인공에게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습니다. 이 차이 하나가 이야기의 의미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열어줍니다. 국가에 의한 희생이냐, 개인의 인간성 사수냐 — 두 결말이 각각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내는지 비교해보면 원작도 한 번쯤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결론
영화 <뮌헨>을 처음 봤을 때 제가 놓쳤던 것은 바로 이겁니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국가라는 거대한 기구가 어떻게 개인의 양심과 인간성을 소모품으로 재단하는지,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저항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아브너가 에프라임의 악수를 거절하는 그 장면 하나가, 2시간 40분짜리 영화 전체를 완성시킵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서늘한 70년대 리얼리즘 미장센, 에릭 바나의 무너져가는 눈빛, 불협화음으로 쌓아올린 음악의 긴장감. 이 모든 것이 하드보일드 첩보 서스펜스라는 장르 외피 안에 정확하게 봉인되어 있습니다. 결말부의 세계무역센터 상징이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진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건 결국 그 질문 때문입니다. 복수는 언제 끝납니까? 그리고 그 비용은 누가 치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