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팬서>(2018)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역대 흥행 수익 기준 상위권을 유지하는 작품입니다.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히어로물이 아니라는 걸 첫 10분 만에 직감했습니다. 고립과 개방 사이에서 벌어지는 진짜 논쟁을 스크린에 올려놓은 영화였으니까요.
영화 <블랙팬서> 와칸다의 고립주의, 평화인가 위선인가
와칸다는 수천 년에 걸쳐 비브라늄(Vibranium)이라는 자원을 독점하며 성장한 나라입니다. 여기서 비브라늄이란 우주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금속 중 하나로, 충격과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가상의 물질입니다. 이 자원 덕분에 와칸다는 세계 최첨단 기술 문명을 구축했지만, 동시에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해보다 반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세계 최빈국 코스프레"를 하며 자국의 이익만 챙겨온 나라가 과연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영화에서 와칸다의 고립주의를 옹호하는 시각과 비판하는 시각은 각각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옹호 측은 비브라늄의 외부 유출이 가져올 전쟁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반대로, 비판 측에서는 그 선택이 결국 전 세계 억압받는 흑인들의 고통을 방관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의 "내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이웃의 비명을 듣지 않겠다"는 논리는, 현실에서도 기득권 집단이 즐겨 쓰는 방어 논리와 정확히 겹칩니다. 고립은 중립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상 유지, 곧 지배 구조의 유지에 복무하는 행위입니다.
킬몽거의 분노, 틀렸는가 옳은가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 분)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캐릭터입니다. 그가 단순한 악당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그의 분노가 역사적 팩트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킬몽거의 아버지 은조부 왕자는 탄압받는 흑인들을 돕기 위해 비브라늄을 외부로 유출하려다 와칸다의 왕에게 즉결처단됩니다. 그리고 그 시신은 방치됩니다. 어린 은자다카, 훗날의 킬몽거가 죽은 아버지를 혼자 발견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가 단순한 선악 구도를 이미 포기했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킬몽거가 와칸다 전통의 왕위 결투 방식, 즉 도전자가 폭포 위 바위에서 왕에게 직접 도전하는 의식인 '타조의 의식'을 역이용해 티찰라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이었습니다. 기득권이 만든 룰로 기득권을 해체하는 방식. 그 아이러니가 지독하리만치 날카로웠습니다.
다만, 킬몽거의 수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비브라늄 무기를 전 세계에 유통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그의 계획은, 억압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억압의 사이클을 만들 뿐이라는 반론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의 분노에는 공명하면서도, 그 분노가 향하는 방향에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습니다.
아프로퓨처리즘 미장센, 영화가 만든 언어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이 영화에서 구축한 비주얼 언어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라는 개념이 핵심인데, 아프로퓨처리즘이란 아프리카의 전통 문화와 미학을 SF적 미래 기술과 결합하는 예술적·문화적 사조를 말합니다. 쿠글러는 이 사조를 스크린 위에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루드비히 요란손이 작곡한 사운드트랙은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와 힙합 비트, 오케스트라를 충돌시키며 독자적인 음악적 문법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사운드트랙 앨범을 따로 찾아 들어봤을 정도였는데, 이 음악이 영상 없이도 그 자체로 완결된 서사를 품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실제로 루드비히 요란손은 이 작업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부산 액션 시퀀스에서 슈리가 원격 조종하는 비브라늄 수트, 즉 나노 기술(Nanotechnology) 기반의 키네틱 에너지 흡수 수트도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한 요소였습니다. 나노 기술이란 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수준의 초미세 단위에서 물질을 조작하고 설계하는 기술을 뜻합니다. 이 기술 덕분에 수트는 목걸이 안에 압축 보관되었다가 전투 상황에서 즉각 전개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고, 이것이 현실 나노 소재 연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판타지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결말의 한계, 그럼에도 걸작인 이유
티찰라가 킬몽거를 제압한 뒤 UN 연설과 캘리포니아 교육 센터 건립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전반부 내내 구조적 불평등의 뿌리를 파고들던 영화가, 결말에서는 온건한 '글로벌 자선' 프레임으로 봉합되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솔직히 가장 아쉬웠습니다. 제 경험상 진짜 날카로운 문제 제기는,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때 그 날이 가장 빠르게 무뎌지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킬몽거의 마지막 대사 "노예선에서 뛰어내린 조상들 곁에 묻어달라"는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단 한 줄로 압축해낸 장면으로, 그 어떤 연설보다 강렬합니다.
- 악당의 논리가 주인공의 논리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들어낸 상업 영화는 극히 드뭅니다.
- 와칸다라는 허구의 나라를 통해, 아프리카가 식민지화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문화적 반사 효과는 영화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영화 흥행 데이터를 보면, <블랙팬서>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약 13억 4천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이 수치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다양성 표현이 실제 시장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역사적 기록으로 평가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봤습니다. 볼 때마다 킬몽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결말의 타협이 아쉽더라도, 그 한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와칸다의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면, 저는 그 타협 이후의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흘러가는지를 보고 싶습니다. 쉬운 평화보다 어려운 정직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이 영화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