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영화 <시카고>의 두 주인공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도 전원 무죄를 받아냈습니다. 1924년 시카고에서 벌어진 두 건의 실제 살인 사건, 그리고 그 재판을 관통한 언론 조작과 배심원 매혹 전략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허구가 아니었다는 사실보다, 실제가 영화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었다는 점이 더 충격이었으니까요.
1924년 시카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
1924년 4월, 시카고의 한 아파트에서 23세의 벨라 안(Beulah Annan)이 불륜 상대 해리 칼스테드를 권총으로 사살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피해자가 숨이 끊어지는 4시간 동안 축음기로 음악을 반복 재생하며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게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냐는 질문에, 제가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 가수로 활동하며 벨 브라운(Belle Browne)이라는 예명을 썼던 엘바 가트너(Belva Gaertner)도 자동차 안에서 남자친구 월터 로를 총으로 쏴 숨지게 했습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피투성이 옷을 입은 채였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여기서 '기억 상실 항변'이란 범행 당시의 기억이 없다고 주장해 고의성을 부정하는 방어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기억이 없으니 살의도 없었다는 논리죠.
두 사건이 터지자 시카고 언론의 반응은 피해자의 죽음보다 용의자의 외모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당시 기사는 벨라를 두고 "쿡 카운티 감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인 용의자"라고 표현했고, 엘바는 "가장 세련된 피의자"로 묘사됐습니다. 제가 직접 당시 자료를 뒤져봤는데, 기사의 절반 이상이 사건의 경위가 아닌 두 여성이 법정에 무엇을 입고 나타났는지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 벨라 안: 불륜 상대 해리 칼스테드를 총으로 살해, 이후 4시간 방치
- 엘바 가트너: 남자친구 월터 로를 차 안에서 총살, "기억 없다" 항변
- 두 사건 모두 1920년대 미국 금주법(Prohibition) 시대를 배경으로 발생
- 언론은 사건의 진상보다 용의자의 외모와 의상 묘사에 지면을 할애
법정을 뒤흔든 언론 플레이와 배심원 매혹 전략
벨라의 변호를 맡은 인물은 윌리엄 플린(William Flynn)이었습니다. 영화 속 빌리 플린(Billy Flynn)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실존 변호사입니다. 그는 재판 전부터 벨라에게 법정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저히 코치했고, 배심원단의 감정선을 공략하는 서사를 설계했습니다.
벨라의 법정 전략 중 핵심은 가짜 임신 주장이었습니다. 그녀는 피해자와 총을 두고 다투다 먼저 잡아 쐈다고 주장했고, 동시에 자신이 임신 중이었는데 피해자가 책임을 거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허위 진술이 명백했음에도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12인의 배심원단은 단 2시간 만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여기서 '배심원 매혹 전략'이란 피고인의 외모와 감정적 호소력을 활용해 배심원의 이성적 판단보다 정서적 반응을 유도하는 재판 전술입니다. 당시 검찰 측이 배심원들에게 "그녀의 미모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별도의 선서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였습니다(출처: Chicago Tribune 아카이브). 그럼에도 결과는 무죄였습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솔직히 이게 100년 전 이야기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엘바의 재판에서는 부유한 전 남편 윌리엄 가트너가 최고의 변호 팀을 꾸려줬습니다. 엘바 역시 법정에 등장할 때마다 신문에 의상이 세세히 묘사됐는데, 하얀 레이스 프릴과 프랑스 굽 에나멜 구두, 쉬폰 스타킹 차림이라는 기사가 실렸을 정도였습니다. 범죄 혐의자가 아니라 패션쇼 참가자처럼 다루는 언론의 프레임은 오늘날 미디어 편향(Media Bias), 즉 보도 기관이 특정 정보를 선택·강조해 여론을 유도하는 구조적 문제와 정확히 같은 패턴이었습니다.
실제 사건이 영화보다 더 냉혹한 이유
무죄 판결을 받은 벨라는 자유를 얻은 지 36시간 만에 재판 비용을 모두 써버린 남편을 떠났습니다. 이유를 묻자 그녀는 "그이는 내가 재밌게 살길 원하지 않아요. 춤도 못 추고, 난 그와 있으면 인생을 허송세월로 날릴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속 록시의 남편 에이머스가 허무하게 소비되는 장면이 이걸 그대로 옮긴 것임을 알았을 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를 거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현실이 더 노골적이었으니까요.
벨라는 유명세를 발판 삼아 영화배우가 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두 번 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1928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두 전 남편과 약혼자가 동시에 참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엘바는 더 오래 살았습니다. 무죄 판결 직후 남편과 유럽 여행을 떠났고, 1926년 또 이혼했으며, 1948년 남편이 사망한 뒤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1965년 80세로 자연사했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그녀의 죽음을 보도한 기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살아있을 때 그토록 화려하게 다뤄진 것과 대비되는 결말이었습니다.
이 모든 실화를 바탕으로 기자 출신 극작가 모린 달라스 왓킨스(Maurine Dallas Watkins)가 1926년 희곡 <시카고>를 썼습니다. 그녀는 실제 재판을 직접 취재하며 두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인물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왓킨스 본인이 나중에 이 실화를 코미디로 만든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1969년 사망할 때까지 뮤지컬화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입니다(출처: Internet Broadway Database). 언론 조작의 공범이 그 조작을 가장 화려하게 재현한 작품의 원작자였다는 사실, 제가 이 대목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시카고는 완전히 실화 기반인가요?
A. 핵심 인물과 재판 구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록시 하트는 벨라 안을, 벨마 켈리는 엘바 가트너를, 빌리 플린은 변호사 윌리엄 플린을 모델로 합니다. 다만 두 여성이 함께 이중창을 부르거나 공동 무대에 서는 장면 등은 극적 허구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직접 접촉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Q. 실제 재판에서 두 사람 모두 무죄를 받은 이유가 뭔가요?
A. 당시 배심원단은 전원 남성으로 구성됐고, 변호 측이 설계한 감정적 서사와 언론의 외모 중심 보도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벨라는 가짜 임신 주장과 감정 호소로, 엘바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고급스러운 법정 패션으로 배심원의 이성적 판단보다 정서적 반응을 유도했습니다. 증거보다 서사가 이긴 사례입니다.
Q. 뮤지컬 시카고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나요?
A. 모린 달라스 왓킨스가 1926년 쓴 희곡이 원작이며, 이를 바탕으로 1975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이 처음 공연됐습니다. 2002년 롭 마셜 감독이 영화화해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수상했고,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오래 공연된 뮤지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Q. 엘바 가트너와 벨라 안, 무죄 이후 어떻게 됐나요?
A. 벨라는 무죄 직후 남편을 버리고 배우의 꿈을 쫓았지만 실패했고, 결핵으로 192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엘바는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다 1965년 캘리포니아에서 80세로 자연사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진 뒤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결론
영화 <시카고>를 볼 때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법정 장면이 아니라 그 이후였습니다. 스펙터클이 끝나면 사람들이 다음 자극으로 넘어가고, 그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은 서사에서 지워진다는 것. 벨라와 엘바의 실제 이야기가 그걸 증명합니다. 언론이 조명을 끄는 순간, 화려했던 무죄 판결도 그냥 과거가 될 뿐이었습니다.
이 실화를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록시와 벨마의 마지막 무대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들이 쟁취한 것이 진짜 승리인지, 아니면 다음 순간 교체될 또 다른 소비재인지를 영화는 끝내 판단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열린 결말이 오히려 이 작품을 지금도 유효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