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구청 민원실 코미디로 시작하는 영화가 미 하원 청문회 증언이라는 역사의 급소를 정면으로 찌를 줄은 몰랐으니까요. 2017년 개봉 당시 저는 그냥 나문희 할머니가 이제훈한테 영어 가르쳐 달라고 떼쓰는 유쾌한 드라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8월 13일 재개봉을 앞두고 다시 꺼내 든 이 영화,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각도로 읽혔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관료주의 장벽과 민원 전쟁, 그 이면의 진짜 구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전반부를 다시 볼수록 코미디 포장 안에 얼마나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숨어 있는지 더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옥분(나문희 분)은 20년간 8천여 건의 민원을 제출한 인물입니다. 구청장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그 흐름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이걸 단순한 진상 민원인의 고집으로 읽으면 이 영화의 절반을 놓치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그 반대로 읽었습니다. 행정편의주의(行政便宜主義), 즉 공무원 조직이 민원인의 실질적 권리보다 내부 처리 효율을 우선시하는 구조적 관행에 맞서, 옥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 수단이 민원 폭탄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행정편의주의란 복잡한 민원을 간소화된 절차와 규정 뒤에 숨겨 실질적 해결 없이 통과시키는 관료 사회의 고질적 속성을 말합니다.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가 처음 등장할 때, 그는 이 시스템의 충실한 집행자입니다. "번호표 있으세요?", "서류부터 작성하세요", "모든 일은 절차에 따라 진행합니다." 그 원칙주의가 처음엔 답답하게 보이지만, 저는 이게 오히려 현실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의 공무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의 없는 규정 준수자. 규격화된 행정 가이드라인이라는 바리케이드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차단하는지, 민재 캐릭터가 그걸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재개발을 노리는 건설 자본과 그에 결탁한 관료 카르텔의 묘사도 날카롭습니다. 영화 속 상가 주인은 세입자 동의 없이 개발을 밀어붙이려 하고, 그 뒤에는 각종 행정 꼼수가 동원됩니다. 이런 구조는 실제 도시 재개발 현장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도시정비사업 구역 내 세입자 분쟁 건수는 2022년 기준 전국 1,200건을 넘어섰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의 정밀한 단면임을 수치가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 민재가 결국 변하는 계기가 거창한 연설이 아니라 옥분이 동생 용재에게 챙겨주는 따끈한 저녁밥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사람의 단단한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은 논리가 아니라 온도입니다. 냉정한 원칙주의자가 무장 해제되는 건 언제나 밥상 앞에서라는 걸, 이 영화는 아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민재와 옥분 사이의 거래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돈 대신 동생의 저녁밥. 이 비공식 교환이 가능했던 건 두 사람 모두 시스템 바깥에서 인간으로 만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전반부의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옥분의 민원 폭탄: 관료주의 장벽에 대항하는 유일한 개인 방어 수단
- 민재의 원칙주의: 악의 없는 규정 집행자가 어떻게 시스템의 공범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
- 건설 자본과 관료의 결탁: 약자의 삶의 터전을 이권의 소모품으로 만드는 구조적 폭력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 증언과 영어라는 무기의 의미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 한 이유가 이민 간 남동생과의 소통과 더불어 미 하원에서 직접 증언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영어 학원에서 도망치듯 뛰쳐나오던 할머니가 사실은 그 언어로 세상의 급소를 찌르려 했다는 반전. 저는 그 순간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드라마가 아님을 확신했습니다.
역사 증언(歷史證言), 즉 생존자가 직접 역사적 사실을 구술하고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는 위안부 문제에서 법적·외교적 공방 못지않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역사 증언이란 피해 당사자가 가해 행위를 직접 진술함으로써 부인과 망각에 저항하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기록 보존 방식입니다. 일본 정부의 조직적 로비와 방해 공작으로 증언 자체가 무산될 뻔한 상황에서 옥분이 연단에 서는 장면은 이 맥락에서 읽어야 그 밀도가 제대로 전달됩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봤는데, 이 영화는 2007년 실제로 있었던 미 하원 121호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21호 결의안이란 일본 정부에 위안부 동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역사적 책임 인정을 촉구하는 결의로, 미국 하원이 채택한 국제적 압박 수단입니다. 당시 실제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청문회에 출석해 영어로 증언했습니다. 영화 속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는 그 역사적 장면의 재현이자, 언어를 빼앗긴 자가 언어를 무기로 되찾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와 위안부 문제는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기록되어 왔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024년 기준 9명에 불과하며, 증언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출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더 무거워지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 한 가지 아쉬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문회 성공이라는 극적 카타르시스 이후, 영화는 이웃들의 따뜻한 연대와 옥분의 밝은 귀환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청문회 이후 국제 사회의 구조적 외면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그 불편한 팩트를 다소 온건한 화해의 정서로 덮어버린 건, 상업 영화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비평적으로는 아쉬운 후퇴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 구청 문을 다시 열어젖히며 민원을 들이미는 옥분의 실루엣이 그 빈자리를 메웁니다. 세상이 아무리 지우려 해도 나는 여기 있다는 선언.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남을 자격이 있습니다.
8월 13일 재개봉을 앞두고, 처음 보시는 분이라면 전반부 코미디에서 웃다가 후반부에서 한 번쯤 멈추게 될 겁니다. 이미 보신 분이라면 이번에는 옥분이 영어를 배우는 매 장면에서 그녀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를 다시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두 번째 관람에서야 그 무게를 제대로 실감했으니까요. 시원한 극장에서, 여름에 볼 수 있는 가장 묵직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