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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 (블랙코미디, 자본주의)

by Movie_별 2026. 5. 17.

영화 어쩔 수가 없다 포스터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제 자신을 주인공과 겹쳐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답게, 스크린 밖의 현실을 아프도록 정확하게 찌릅니다. 20년 경력의 제지업계 베테랑이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고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기로 결심하는 이 이야기가, 왜 불편하면서도 공감이 가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블랙코미디라는 외피 안에 숨겨진 구직 경쟁의 맨얼굴

일반적으로 블랙코미디(Black Comedy)는 어두운 소재를 웃음으로 포장해 거리감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블랙코미디란 죽음, 폭력, 사회적 비극처럼 직접 다루기 불편한 주제를 풍자와 유머로 희석시키는 장르를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웃음이 나오기는 했지만, 웃고 난 직후에 오히려 더 서늘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주인공 유만수는 태양제지에서 20년 넘게 커리어를 쌓고 펄프맨상까지 받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미국계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가 회사 지분을 인수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구조조정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사모펀드란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 지분을 사들인 뒤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방식을 의미합니다. 경력이 길수록 연봉이 높고 나이도 많다는 이유로, 성과와 무관하게 가장 먼저 잘리는 구조입니다.

3개월간의 구직 활동이 전부 실패로 돌아간 뒤, 만수는 결단을 내립니다. 자신보다 스펙이 뛰어난 경쟁자들을 직접 제거하겠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그 방식입니다. 그는 먼저 허위 채용 공고를 내서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수집하고 스펙을 분석합니다. 이 장면은 현대적인 채용 프로세스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데, 그 분석이 끝난 뒤 이어지는 건 도끼와 총입니다. 넥타이를 매고 살인 도구를 만지작거리는 이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들이 전달하는 의미의 총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점입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저도 치열한 취업 준비 시절, 경쟁자의 스펙을 보며 "저 사람만 없으면"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 감정 자체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만수의 선택을 완전히 낯설게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 만수의 행동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보입니다.

  • 1단계: 허위 채용 공고로 경쟁자 이력서 수집 및 스펙 비교 분석
  • 2단계: 제거 대상 선정 — 알코올 중독자 구범모, 구두 매장 점원으로 일하는 고시조, 현직 반장 최선출
  • 3단계: 각 타겟에게 접근해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을 시도
  • 4단계: 매 시도마다 어긋나고 실패하는 슬랩스틱(Slapstick) 구조 반복

슬랩스틱이란 과장된 신체 행동과 실수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기법으로, 전통적으로는 가벼운 소재에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슬랩스틱을 얹습니다. 그 충돌이 낳는 불쾌한 웃음이야말로 박찬욱 감독이 의도한 핵심 정서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합리화의 주문, "어쩔 수가 없다"

저는 솔직히 이 영화의 제목이 단순한 캐릭터 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이 말이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데올로기적 기제(Ideological Apparatus)란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언어적, 제도적 장치를 의미합니다.

영화 안에서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세 주체가 반복합니다. 미국 본사가 해고를 통보하면서, 만수가 살인을 앞두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리고 새 고용주가 AI 자동화 도입을 정당화하면서입니다. 이 세 맥락의 공통점은 모두 '가해자'가 스스로를 '구조의 피해자'로 포장한다는 점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논리는 현실에서도 흔하게 작동합니다. "시장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시스템이 그렇게 돌아가니 나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얼마나 손쉽게 도덕적 면죄부가 되는지, 저 역시 이기적인 선택 앞에서 비슷한 주문을 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건, 사실 어쩔 수 있었다는 겁니다.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고, 아내의 조언처럼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수가 거부한 선택지들은 모두 그가 수십 년간 쌓아온 삶의 형태, 즉 가장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흔드는 것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내면의 정의를 뜻하며, 이것이 무너질 때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재취업 소요 기간은 평균 11개월로 다른 연령대 대비 두 배 이상 길며, 재취업 후 임금도 이전 직장 대비 평균 30%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만수의 절박함이 통계 수치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알파메일(Alpha Male)처럼 보이다가도, 압박 앞에서 무너지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캐릭터의 양면을 동시에 소화합니다. 그 행위는 공감할 수 없지만 동기는 이해 가능한 그 경계선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불편한 공감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입니다.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서 이병헌은 커리어 최정점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5년 미래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AI 자동화로 인해 향후 5년간 전 세계에서 약 8500만 개의 일자리가 대체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World Economic Forum). 영화 결말에서 만수가 앉게 된 공장에 로봇이 종이를 나르는 장면은 그래서 더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그토록 피를 흘려 지켜낸 자리가,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세계 위에 놓여 있으니까요.

어쩔 수가 없다는 만수의 기구한 선택을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관을 나서며 저는 만수가 앉은 그 빈 의자가 언젠가 제 의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로 묻는 건 결국 하나입니다. 시스템이 등 떠민 자리에서 내가 선택한 방식이, 과연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을 진짜로 지킨 것이냐고. 극장을 나서고도 한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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