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최소 5명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조디악 킬러(Zodiac Killer)는 단 한 번도 공식 기소되지 않은 채 수사가 종결됐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범행을 자랑하는 편지까지 직접 보내왔는데, 어떻게 아무도 잡지 못했다는 건지.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2007년작 영화 <조디악>은 바로 그 불가해한 질문을 157분 동안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암호 편지와 언론 공모 — 조디악 킬러는 왜 신문사에 편지를 보냈을까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조디악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을 비롯한 주요 신문사 세 곳에 동시에 암호화된 편지를 발송합니다. 여기서 암호문(cipher)이란 단순한 기호 나열이 아니라, 범인이 자신만의 치환 규칙으로 메시지를 숨겨놓은 일종의 잠금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열쇠 없이는 내용을 읽을 수 없도록 설계된 퍼즐이죠. 제가 직접 관련 자료를 찾아봤을 때, 전문 암호 해독가들도 조디악의 네 가지 암호 중 단 하나만 해독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조디악이 편지에 요구한 건 단순했습니다. 일면에 게재하지 않으면 추가 범행을 감행하겠다는 협박이었죠. 신문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단독 특종이지만, 게재하는 순간 범인의 요구에 응하는 꼴이 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불편했던 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언론이 범인의 공포 확산 도구로 사용되는 구조, 즉 범인이 언론의 보도 욕구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이용했다는 사실이요.
실제로 영화 속 경찰 당국이 조디악에 대한 무반응 전략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사관들은 조디악의 범행 동기가 관심과 주목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더 이상 언론에 사건을 노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합니다. 프로파일링(profiling), 즉 범인의 심리 패턴과 행동 동기를 분석해 수사 방향을 정하는 기법이 이 시점에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셈이죠. 형사 데이브 토스키(Dave Toschi)가 발레이오(Vallejo) 사건 현장에서 피해 금액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단순 강도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 장면이 바로 그 프로파일링의 시작입니다.
조디악이 언론을 활용한 방식, 핵심 정리
- 암호문 편지를 3개 신문사에 동시 발송해 보도 경쟁을 유도
- 일면 게재를 강요하며 공포를 시민 전체로 확산
-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해 관심을 유지
- TV 쇼에 직접 전화해 인터뷰를 자청하는 등 미디어 활용을 극대화
- 범행 동기가 노출된 이후 잠시 활동을 중단하는 전략적 침묵 구사
흥미로운 건 조디악이라는 이름 자체도 당시 인기 시계 브랜드를 모방한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상징하는 십자형 기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브랜딩(branding)을 계산한 범인이었다는 거죠. 제 경험상 이런 세부 맥락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초반부 신문사 장면들이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조디악이 기자들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언론 시스템 전체를 조종하고 있었던 겁니다. 출처: FBI 공식 사건 기록 — Zodiac Killer
핀처의 미장센과 집착의 서사 — 이 영화가 카타르시스를 거부하는 이유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이 영화에서 선택한 가장 도발적인 결정은 해소되지 않는 결말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엔딩 자막이 올라오는 순간 제가 느낀 건 허탈함도 분노도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서늘한 공허감이었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죠.
핀처는 디지털 시네마토그래피(digital cinematography)를 이 작품에 전격 도입했습니다. 여기서 디지털 시네마토그래피란 필름 카메라 대신 디지털 센서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필름 특유의 입자감 없이 차갑고 납빛에 가까운 색감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복고풍 향수를 배제하고, 서류 더미와 형광등 빛 아래의 건조한 현실감을 택한 것이죠. 제 경우엔 이 촬영 방식이 오히려 사건의 냉혹함을 더 강하게 체감하게 만들었습니다. 화면이 따뜻하지 않으니까, 감상적으로 빠져들 틈이 없었거든요. 출처: Rotten Tomatoes — Zodiac (2007) 평론 종합
로버트 그레이스미스(Robert Graysmith)라는 인물은 형사도 기자도 아닙니다. 신문사 삽화가가 범인을 추적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이 영화의 태도를 말해줍니다. 체제 안에 있는 사람들, 즉 경찰과 전문 기자들이 관할권 다툼과 증거 부족이라는 바리케이드 앞에서 멈출 때, 시스템 바깥의 한 개인이 도서관에서 암호 해독 서적을 뒤지며 혼자 전진합니다. 제가 직접 그레이스미스의 실제 저서 내용을 찾아봤을 때, 그가 수사에 집착하는 동안 결혼 생활이 파탄 나고 두 아이와도 멀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영화는 그 대가를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아서 리 앨런과 결말 — 확신과 증거 사이의 간극
유력 용의자 아서 리 앨런(Arthur Leigh Allen)을 향한 수사는 영화 후반부를 통째로 잡아먹습니다. 양손잡이라는 점, 특정 단어 철자를 조디악과 동일하게 틀린다는 점, 달린 페린(Darlene Ferrin) 살해 현장에서 불과 45미터 거리에 거주했다는 사실까지.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며 느낀 건 "이 사람이 범인이 맞겠구나"가 아니라 "이게 전부 상황 증거(circumstantial evidence)일 뿐이구나"였습니다. 상황 증거란 범행 현장이나 행위를 직접 입증하지 못하고, 간접적인 정황으로 범인을 추론하게 하는 증거를 말합니다. 법정에서 유죄 입증의 충분한 근거가 되기 어렵죠.
실제로 2002년 조디악 편지에서 채취한 DNA는 앨런과 일치하지 않았고, 결국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은 공식적으로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유일한 생존 목격자 마이클 매기우(Michael Mageau)가 앨런을 범인으로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이 결말을 두고 "편리하게 봉합했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핀처가 끝까지 해소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더 신뢰합니다. 범인을 잡는 쾌감 대신 잡지 못한 채 흘러간 수십 년의 무게를 선택한 감독의 결정이 제 기준에선 더 정직한 서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디악 킬러는 실제로 잡혔나요?
A.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기소된 인물은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은 2004년 수사를 공식 종결했고,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던 아서 리 앨런은 2002년 사망했습니다. DNA 검사에서도 일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보기 전 꽤 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Q. 영화 조디악은 실화 기반인가요?
A. 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영화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삽화가였던 로버트 그레이스미스가 직접 쓴 저서 『조디악(Zodiac)』을 원작으로 제작됐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형사 데이브 토스키, 기자 폴 에이브리, 용의자 아서 리 앨런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Q. 영화가 2시간 37분인데 지루하지 않나요?
A. 빠른 추격 장면이나 강렬한 액션을 기대하면 분명 체감 속도가 느리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봤을 때, 서류 수사 장면들이 쌓여가면서 오히려 긴장감이 내내 유지됐습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구조가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Q. 조디악 암호는 결국 해독됐나요?
A. 조디악이 보낸 암호문 중 첫 번째(340자 암호 포함 총 4종)만 1969년 교사 부부에 의해 해독됐고, 나머지는 수십 년간 미해독 상태였습니다. 2020년에는 국제 아마추어 암호 해독팀이 두 번째 암호 해독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저의 지식 기준 시점 이후 추가 진전이 있었는지는 최신 검색으로 확인하시는 걸 권합니다.
결론
영화 <조디악>은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잡지 못한 채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장면은 화려한 살인 시퀀스가 아니라, 그레이스미스가 리치몬드 자재 업소에서 앨런과 마주 선 채 아무 말도 없이 그 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증명할 수 없지만 확신하는 것, 그 무력함을 안고도 발걸음을 돌리는 것. 그게 이 영화 전체의 온도였습니다.
스릴러 장르가 익숙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제 사건이 실제로 어떻게 사람의 삶을 잠식하는지, 체제와 증거주의의 한계가 어디서 드러나는지 들여다보고 싶다면, <조디악>은 그 어떤 작품보다 솔직한 답을 건네줍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냉정하고 가장 오래 남는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