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만화 실사화 영화는 망한다는 공식, 정말 맞을까요? 진격의 거인, 강철의 연금술사가 쏟아낸 혹평을 떠올리면 그 공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킹덤(2019)을 직접 보고 나서 저는 그 공식을 제대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라 야스히사 원작의 4,700만 부짜리 전국시대 서사를 사토 신스케 감독이 스크린 위에 옮긴 결과물,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습니다.
실사화의 공식을 깨려 한 킹덤의 제작 방식
일반적으로 일본 실사화 영화는 원작 팬덤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채 조악한 세트와 어색한 분장으로 끝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 보니 킹덤은 그 흐름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실제 중국 로케이션을 택했고, 대규모 야외 세트를 직접 시공해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거친 질감을 살려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란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이어진 중국의 분열기로, 수십 개의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전쟁의 시대를 뜻합니다. 이 배경을 종이 세트가 아닌 진짜 흙먼지 위에서 구현했다는 점이 스크린에서 느껴졌습니다.
원작자 하라 야스히사가 각본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것도 눈여겨볼 지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작자가 각본에 관여하면 서사의 흐름이 굳어져 영화적 밀도가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경우엔 오히려 반대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원작의 디테일을 아는 사람이 직접 취사선택을 했기 때문에 1권부터 수 권에 걸친 이야기를 2시간 14분으로 압축하면서도 캐릭터의 동기가 뭉개지지 않았습니다. 사토 신스케 감독은 앞서 간츠(GANTZ), 도서관 전쟁 같은 원작 만화·라이트노벨 실사화 작업을 거쳐 이 장르의 생리를 몸으로 익힌 감독입니다. 그 축적이 킹덤에서 비교적 고른 완성도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자키 켄토가 연기한 신(信)은 전형적인 소년 만화형 주인공입니다. 소년 만화형 주인공이란 압도적인 무력보다는 무모한 돌진과 감정적 확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캐릭터 유형을 말합니다. 야마자키 켄토가 그간 쌓아온 순정 만화적 이미지를 고려하면 다소 의외의 캐스팅이었는데, 실제로 보면 육체적 소진감과 분노의 온도를 꽤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습니다. 요시자와 료가 영정(嬴政)과 그 대역인 표(漂)를 1인 2역으로 소화한 것도 서사적으로 자연스럽게 기능했고요.
- 실제 중국 로케이션과 대형 세트 시공으로 시각적 설득력 확보
- 원작자 하라 야스히사의 각본 직접 참여로 캐릭터 동기 보존
- 사토 신스케 감독의 실사화 장르 경험이 완성도에 직접 기여
- 야마자키 켄토, 요시자와 료, 혼고 카나타 등 캐스팅 밀도가 고름
- 2019년 일본 흥행 순위 3위, 실사 영화 중 유일한 순위권 진입(출처: 일본 영화제작자연맹)
소년 만화의 문법이 신분제 서사를 어떻게 소화했는가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저는 절반쯤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는 무게감 있는 배경을 소년 만화의 문법으로 다루면 대개 역사가 장식품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킹덤은 그 문법을 오히려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활용했습니다. 노예 신분의 소년이 검 하나로 신분 제도의 벽을 뚫는다는 서사는 드래곤볼이나 나루토가 반복해 온 소년 만화의 플롯 문법, 즉 '단독자의 무모한 상승'을 그대로 따릅니다. 이 문법이 시대극에 접목되면서 역사를 무거워하는 사람도 이야기 안에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고 제 경험상 느꼈습니다.
다만 이 지점이 동시에 영화의 명백한 한계이기도 합니다. 제가 서사를 따라가면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은 후반부였습니다. 전반부에서 노예의 참혹한 일상과 표의 죽음을 통해 봉건적 신분 제도(封建的 身分制度)가 개인의 목숨을 어떻게 소모품 취급하는지를 꽤 날 선 시선으로 파고들었는데, 봉건적 신분 제도란 태어난 계급이 평생의 역할과 가치를 규정하는 위계 구조를 말합니다. 그 구조의 모순을 정면으로 해체하기보다는, 주인공의 활약으로 권력을 탈환하고 새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미소 프레임으로 마무리 짓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결말의 쾌감이 전반부의 긴장을 다소 편리하게 세척해 버린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일정한 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미장센(mise-en-scène) 수준이 상업 실사화 영화의 평균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인물·공간·조명·구도의 총체적 연출을 뜻하는 영화 용어입니다. 함양궁 계단 전투 시퀀스에서 야마다 유타카(Yutaka Yamada)의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밀어붙이는 타이밍과 카메라가 신의 동선을 따라가는 방식은, 단순 칼부림 유희로 소비되지 않는 긴장의 밀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본 상업 영화 특유의 음악 과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하지만, 적어도 킹덤에서 음악은 감정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보다는 장면의 속도를 조율하는 쪽으로 기능했습니다.
원작 만화의 캐릭터 디자인을 그대로 실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위화감, 예컨대 왕기 장군의 수염 형태나 하시모토 칸나가 연기한 하루초의 의상 같은 요소들은 원작 팬을 배려한 선택이지만 실사 영화로서의 자연스러움을 일부 포기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일본 출판 시장의 구조적 특성, 즉 원작자 영향력이 영화 시장보다 강한 생태계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점은 킹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원작 만화의 설정을 기점으로 삼되 서사 전체를 대담하게 재구성한 방식과 대비하면, 킹덤이 선택한 원작 충실 노선의 득실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원작 충실도와 영화적 독립성 사이의 균형은 실사화 장르가 언제나 안고 가는 딜레마입니다(출처: 프랑스 시네마테크).
자주 묻는 질문
Q. 킹덤 원작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안 봐도 영화 이해가 되나요?
A. 제 경험상 원작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주인공 신과 영정의 관계, 쿠데타의 구도가 초반부에 충분히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등장인물이 많아 한 번에 이름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Q. 킹덤이 다른 일본 실사화 영화와 다른 점이 뭔가요?
A. 일반적으로 일본 실사화는 예산 부족과 세트의 조악함이 문제로 지적되는데, 킹덤은 실제 중국 로케이션과 대형 세트를 사용해 시각적 설득력을 확보했습니다. 원작자가 각본에 직접 참여한 것도 캐릭터 서사를 지키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습니다.
Q. 한국 관객이 보기에 어색한 부분이 있나요?
A.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등장인물이 전원 일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 경우엔 설정을 인지하고 나서는 크게 걸리지 않았지만, 역사 고증에 민감한 분이라면 초반에 적응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Q. 킹덤 속편이 있나요?
A. 네, 1편의 흥행을 바탕으로 속편이 제작되었습니다. 원작 만화의 권수가 방대한 만큼 시리즈로 이어지기에 유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1편만 본 상태라면 속편에서 전투 스케일이 더 확장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킹덤은 실사화 영화는 망한다는 공식을 전부 뒤집지는 못했지만, 그 공식에 균열을 낸 작품입니다. 중국 로케이션, 원작자의 각본 참여, 사토 신스케 감독의 실사화 장르 경험이 맞물려 일본 상업 영화가 내놓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을 보여줬습니다. 서사의 후반부가 전반부의 날 선 신분제 비판을 충분히 밀고 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 판단으로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무거운 소재를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킹덤은 꽤 유효한 진입로입니다. 역사 서사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이라면 소년 만화의 문법이 오히려 편안한 통로가 될 수 있고, 실사화 장르에 지쳐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제시하는 비교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1편을 보고 서사가 당긴다면 속편으로 이어가는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