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영화를 볼 때마다 불편한 감각이 올라옵니다. 스크린 위에서 병사들이 쓰러지는 장면이 반복될수록, "저게 영웅적인 희생인가, 아니면 그냥 도살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거든요. 사토 신스케(Sato Shinsuke) 감독의 <킹덤 2: 아득한 대지로>(Kingdom 2: Far and Away, 2022)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유다오 평원에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첫 장면부터 제가 오랫동안 품어온 그 불편함이 정확하게 건드려졌습니다.
유다오 전투가 보여주는 전쟁 미장센과 징집 제도의 민낯
영화는 진나라의 보병 동원 장면으로 막을 올립니다.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풋내기 병사들이 유다오 평원으로 밀려 나오고, 위나라 기마대의 창끝이 그들의 대열을 가릅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스펙터클에 대한 감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 병사들은 왜 저기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먼저였습니다.
사토 신스케 감독은 대규모 오픈 세트 미장센(mise-en-scène)을 활용해 이 장면을 설계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카메라 앞에 배치되는 배경, 조명, 배우의 위치와 동선 등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뜻합니다. 감독은 황량한 유다오 평원의 질감, 야마다 유타카(Yutaka Yamada)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스코어, 그리고 보병들이 시체를 밟고 전진하는 백병전(hand-to-hand combat) 연출을 영리하게 조합했습니다. 백병전이란 양측 병력이 지근거리에서 직접 부딪히는 근접 전투 방식을 말합니다. 그 결과물은 전쟁 액션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미학적 최고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니,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뚜렷한 서사적 낙차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반부는 징집 제도(conscription system)의 구조적 폭력을 냉정하게 해부합니다. 징집 제도란 국가가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 개인을 군사 복무에 투입하는 시스템으로, 역사적으로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작동해 온 국가 권력의 핵심 장치입니다. 영화 속 신(야마자키 켄토 분)이 처음 진영에 합류하는 과정은 그 폭력성을 정면으로 포착합니다.
하지만 결말부는 다릅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전우애와 다음 출정을 향한 결의로 마무리되면서, 전반부가 쌓아올린 징집 제도의 비정한 모순이 다소 부드럽게 덮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이 장르의 고질적인 딜레마입니다. 오락 영화로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줘야 하는 구조와, 전쟁의 잔혹성을 끝까지 직시해야 하는 서사적 책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균열이죠. 사토 신스케 감독도 이 균열을 완전히 비껴가지는 못했습니다.
- 대규모 오픈 세트 미장센으로 구현한 유다오 평원의 리얼리티는 장르 최고 수준에 해당합니다
- 징집 제도의 구조적 폭력을 전반부에서 냉정하게 포착한 서사적 밀도가 돋보입니다
- 후반부 전우애 중심의 마무리는 전반부의 문제의식을 일부 희석시키는 장르적 타협으로 읽힙니다
- 야마다 유타카의 스코어는 전투 시퀀스의 감각적 밀도를 한 층 끌어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강계의 월무가 남긴 것 — 단독자의 역공과 그 한계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장면은 강계(세이아 진 분)의 검술 비기 월무(月舞) 장면입니다. 위나라의 정예 기마 부대가 진형을 무너뜨리며 총공세를 펼치는 절체절명의 순간, 정체를 숨기고 있던 강계가 홀로 수십 명의 적 기마병을 상대하는 이 시퀀스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액션 스펙터클이 아니라, 거대 권력 앞에서 단 한 명의 단독자(individual)가 가질 수 있는 돌파 가능성을 시각화한 장면으로 읽혔거든요.
월무(Moon Dance)는 강계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검술 비기로, 영화 안에서는 개인이 체득한 고유한 무예 체계가 국가 조직력 앞에서도 유효한 반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서사적 근거로 기능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주목한 건 강계의 검술 자체보다, 그 역공이 가능해진 조건이었습니다. 군사 포식자들이 "오합지졸 보병 따위가 정예 기마대를 상대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당연시하는 바로 그 순간, 그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진나라와 위나라의 국가 총력전(total war) 구도 속에서 이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국가 총력전이란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 인력, 민간 자원까지 동원하는 전면적 국가 간 전쟁을 의미합니다. 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에 따르면 고대 전쟁에서도 국가 총력전의 구조는 개인을 국가 목표의 소모 단위로 재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영화는 그 구조 안에서 신과 강계가 소모품 프레임을 내부에서 깨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게 이 작품이 단순한 전쟁 블록버스터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 지점에서도 한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강계의 월무가 국가 총력전의 모순을 실제로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결국 진나라의 전투 승리를 완성하는 도구로 수렴된다는 점입니다. 단독자의 역공이 기존 국가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아이러니죠. 영화가 끝까지 이 질문을 붙잡지 않은 건 아쉬운 대목이지만, 그럼에도 강계와 신이라는 두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서사는 충분히 각인됩니다.
실제로 킹덤 시리즈의 원작 만화는 출처: 소년점프(Shonen Jump) 계열에서 연재된 하라 야스히사의 장기 연재작으로, 전쟁과 개인의 성장 서사를 결합한 방식이 해외에서도 폭넓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사 영화화 이후 이 서사가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원작 팬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이유도, 결국 이 단독자의 성장 플롯이 국가 서사에 어느 정도까지 포획되는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킹덤 2 아득한 대지로, 1편 안 보고 봐도 되나요?
A. 저는 1편과 2편을 연달아 봤는데, 솔직히 2편만 먼저 봐도 전투 서사 자체는 따라가는 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다만 신의 출신 배경과 영(진시황) 캐릭터의 맥락은 1편에서 쌓이는 부분이라, 더 풍부하게 즐기려면 순서대로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Q. 강계 월무 장면, 원작 만화랑 다른 점이 있나요?
A. 원작에서 강계의 검술 비기는 좀 더 단계적으로 각성되는 과정이 묘사됩니다. 실사 영화에서는 그 과정을 압축해 단 한 번의 시퀀스로 터트리는 방식을 택했는데, 제 경우엔 오히려 그 집약된 연출이 시각적 충격을 더 강하게 남겼습니다. 원작 팬이라면 차이가 눈에 보이겠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충분히 높습니다.
Q. 유다오 전투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킹덤 시리즈는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되, 전투 명칭과 세부 전개는 원작 작가의 창작이 상당 부분 가미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진나라의 중원 통일 과정에서 위나라와의 대규모 충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다오 전투의 구체적인 묘사는 작품 고유의 서사입니다.
Q. 사토 신스케 감독의 연출이 이 시리즈에서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A. 제가 직접 비교해 보니, 국내외 다른 고대 전쟁 영화들이 CG 의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반면, 사토 신스케 감독은 대규모 오픈 세트와 실제 엑스트라 군중을 활용한 미장센 설계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전투 장면의 질감과 밀도가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론
<킹덤 2: 아득한 대지로>는 전쟁 미장센과 백병전 연출의 완성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 남은 건, 유다오 평원의 피비린내 나는 진흙 위에서도 자기 존재의 방식을 타협하지 않던 신과 강계의 안광이었습니다.
징집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후반부 전우애로 봉합한 한계, 월무의 역공이 결국 국가 체제 승리로 귀결된 아이러니까지 포함해서, 이 영화는 빛과 한계를 함께 안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 명암을 인식한 채로 보는 게 이 시리즈를 더 솔직하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킹덤 3편의 방향성이 어디로 이어질지, 이미 제 관심이 거기 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