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가볍게 웃고 끝낼 코미디 한 편으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나서는 길에 여자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더군요. 노키즈, 딩크족, 솔직함의 가치. 코미디 영화 한 편이 이렇게 많은 것을 건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노키즈 정서, 그냥 개인 취향으로 볼 수 있을까
영화 속 보나(문채원)는 아이들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노키즈(No Kids) 주의자로 등장합니다. 노키즈란 말 그대로 아이를 동반한 손님이나 자녀 자체를 배제하는 가치관을 뜻하는데, 처음엔 영화적 설정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건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닙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합계출산율(TFR)은 0.72명으로, 이는 전 세계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출처: 통계청).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를 뜻하는데, 이 숫자가 1을 밑돈다는 건 인구 유지에 필요한 최소치인 2.1에 한참 못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저 역시 이 수치의 어딘가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여자친구와 함께 유튜브에서 육아 영상을 보다가 "오빠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솔직히 바로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딩크족(DINK)이라는 선택지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게 제 솔직한 현재 위치입니다. 딩크족이란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로, 맞벌이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나 커플을 뜻합니다.
딩크족이라는 선택,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도, 여자친구도 아이를 당장 갖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이건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라, 한 생명을 세상에 불러오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주체가 저보다는 여자친구 쪽에 훨씬 더 큰 신체적, 심리적 부담이 따른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일찌감치 "네 선택을 우선적으로 존중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닫혀 있는 건 아닙니다. 길거리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거나,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깔깔 웃는 영상을 보면 "저런 게 사람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여자친구와도 그런 순간에는 반쯤 농담처럼 "하트맨에 나오는 소영이 같은 딸이라면 우리랑 잘 맞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나눈 적도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영화는 꽤 정직하게 담아냅니다. 보나가 처음에는 아이를 거부하다가 소영을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감정의 레이어(layer)가 쌓이듯 자연스럽게 묘사됩니다. 레이어란 감정이나 서사가 단면적이지 않고 겹겹이 쌓여있는 구조를 뜻하는데, 이 부분이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와 이 영화를 구분하는 지점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무자녀를 선택하는 이유 중 '경제적 부담'과 함께 '자유로운 삶의 유지'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딩크족이 증가하는 현상은 단순히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지금의 사회 구조 안에서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내린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솔직함의 가치, 영화가 남긴 진짜 메시지
승민(권상우)이 보나에게 딸 소영의 존재를 숨기는 장면들은 코미디지만, 보는 내내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라, 가까운 사람에게 정작 중요한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오해를 키운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영화에서 승민이 고른 해법은 결국 '진심의 고백'입니다.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그것이 관계의 내러티브(narrative)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내러티브란 서사 구조, 즉 사건과 감정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승민이 거짓 내러티브를 유지하던 삶에서 진짜 내러티브로 돌아오는 순간, 영화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저에게 이 부분은 꽤 직접적인 자극이었습니다. 퇴사 이후의 삶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블로그를 시작한 게, 어쩌면 저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솔직해지는 것, 가족이든 여자친구든 가까운 사람에게 지금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말하는 것. 그게 승민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행동 방식이었고, 저도 그걸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정리해 본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숨기는 건 결국 스스로를 가장 지치게 만든다
- 노키즈, 딩크족 같은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성 방식의 차이다
- 진심 어린 표현은 오해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제가 지금 이직을 준비 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습니다. 하트맨의 승민처럼, 과거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지금 현재를 버티고 있는 상태라는 것도요. 승민이 홍대 언더그라운드 씬(underground scene)에서 내려와 악기점을 운영하듯, 저 역시 군이라는 조직에서 나와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중입니다. 언더그라운드 씬이란 주류 대중문화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음악 커뮤니티를 뜻하는 용어로, 영화에서는 승민의 청춘과 꿈이 응축된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이 영화가 이직이나 새 출발을 앞둔 분들에게 유독 와닿는 이유는, 주인공이 대단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승민은 실패한 적 있고, 꿈을 접은 적 있고, 지금도 허덕이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무대 위에서 다시 노래하는 장면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줍니다. 카타르시스란 억눌려 있던 감정이 극적 상황을 통해 한꺼번에 해소되는 감각을 뜻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개념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정확히 그 기능을 수행합니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가 저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성공도, 행복도, 관계도 결국 자신이 먼저 내밀 때 돌아오는 거라는 말로 제 나름대로 해석했습니다.
생각이 많거나 현재의 위치가 불안한 분들에게, 이 영화는 거창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잠깐 웃으면서 숨을 고르게 해줍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이유가 됩니다. 저처럼 아직 방향을 잡아가는 중이라면, 한 번쯤 가볍게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하트맨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