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개봉 당시 R등급 고어 액션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영화가 있습니다. 토미 위르콜라(Tommy Wirkola)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입니다.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림 형제 동화를 원작으로 한 성인용 액션이라니, 어설픈 패러디로 끝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직접 봐보니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부패한 공권력, 진짜 적은 마녀가 아니었다
영화가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를 배경으로 본격 전개될 때, 저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연쇄 납치되는 혼란 속에서 마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범인을 잡는 게 아니라, 무고한 처녀를 마녀로 지목해 광장에 세우는 것이었으니까요. 보안관 베린저(피터 스토메어 분)의 행동이 그걸 정확히 보여줍니다.
베린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마을의 질서"와 "공적 권위"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실적과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남매를 방해하고 심지어 그레텔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단순한 조연 악역이 아니라, 체제 안에서 공권력이 어떻게 부패하는지를 보여주는 기능적 장치라고 읽었습니다. 마녀 카르텔보다 오히려 더 일상적이고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위협이라는 점에서요.
베린저가 고용한 추적꾼들이 밤에 숲 속에서 야영하다 대마녀 뮤리엘(팜케 얀센 분)에게 전멸당하는 장면은 그 상징성이 꽤 직접적입니다. 거액의 보수를 받고 야간 퀘스트를 수행하던 이들은 마녀들에게 유리한 야간 조건을 계산하지 못한 채 들어갔다가 단체로 끔살당하죠. 체제의 무능이 개인의 목숨을 소모품처럼 갈아 넣는 구조,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날카롭게 느낀 부분이 여기였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그 구조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 즉 시대착오적 스팀펑크 무기로 무장한 이 남매는 보안관의 압박 앞에서도 독자적인 사냥 방식을 고수합니다. 여기서 아나크로니즘이란 중세 배경에 현대적 기관총, 다연발 석궁, 주사기 같은 소품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연출 기법으로, 이 영화의 가장 독보적인 비주얼 언어입니다.
- 무고한 처녀 미나를 화형 직전에 구출하며 남매는 첫 활동을 시작합니다
- 보안관 베린저는 마녀보다 더 일상적인 위협으로 작동합니다
- 체제의 추적꾼들은 야간 조건을 무시한 채 숲에 들어가 전멸당합니다
- 남매는 공권력의 프레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역공 방어기제를 가동합니다
붉은 달과 혈통의 비밀, 부모님이 남매를 버린 진짜 이유
영화 중반까지 저는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의 마법에 면역인 이유를 단순히 "설정상의 편의"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뮤리엘이 남매 앞에 나타나 모든 것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그 인식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사실 남매의 어머니는 인간을 해치지 않는 백마녀(White Witch), 즉 선한 마녀였습니다. 흑마녀들과 달리 백마녀는 외모가 흉측하게 변하지 않으며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갑니다. 대마녀 뮤리엘은 불에 타지 않는 마법 의식을 완성하려면 마지막 재료로 바로 이 백마녀의 심장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실력이 너무 강력해 직접 손댈 수 없었고, 대신 그 피를 이어받은 그레텔의 심장을 노리기 위해 어머니를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로 고발합니다.
어머니는 도망가지도, 인간들을 공격하지도 않은 채 화형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는 교수형을 당했고요. 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건 그들이 죽기 전 남매를 숲에 버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죽은 뒤 마녀들이 그레텔을 찾지 못하도록, 숲속에 숨겨둔 것이었습니다. 방치가 아니라 보호였던 거죠.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감각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개기월식(Total Lunar Eclipse)이 일어나는 붉은 달의 밤, 뮤리엘은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에 태어난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 마녀들에게 화염 면역 능력을 부여하는 의식을 치르려 합니다. 여기서 개기월식이란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위치해 달 전체가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으로, 영화에서는 흑마법 의식의 타이밍을 결정짓는 핵심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 설정 덕분에 서사에 시간 압박과 긴장감이 동시에 생깁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이 구조적 타임리밋이 후반부 액션의 밀도를 상당히 높여줬습니다.
미나와 트롤 에드워드, 허술함과 연대 사이의 묘한 균형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묘하게 허당끼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요. 남매는 마녀의 마법에 면역이고 강력한 무기도 갖고 있지만, 막상 전투에선 번번이 얻어맞습니다. 잡마녀 하나 잡는 데도 진땀을 흘리고, 뮤리엘의 습격에는 완패해 4월에 태어난 마지막 아이마저 납치당합니다. 이 허당끼가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오히려 영화를 더 재밌게 만드는 요소가 됐습니다.
헨젤이 빗자루에서 떨어진 뒤 치료해 준 미나가 사실 백마녀였다는 반전은 꽤 깔끔합니다. 어머니처럼 인간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선한 마녀였던 미나는 헨젤의 회복을 돕고 후반부 전투에서 게틀링 기관총(Gatling Gun)을 난사하며 마녀 의식에 결정적인 혼란을 만들어냅니다. 게틀링 기관총이란 여러 총신이 회전하며 연속으로 총탄을 발사하는 다연발 회전식 총기로, 영화에선 중세 배경에 이 무기가 등장함으로써 아나크로니즘 연출의 정점을 찍습니다.
트롤 에드워드의 존재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트롤은 마녀를 섬긴다"는 말을 남기고 그레텔을 구해준 에드워드는, 결말까지 봐도 개연성이 완전히 설명되진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영화의 명백한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후반부 의식 현장에서 그레텔을 구출한 뒤 뮤리엘에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그레텔이 스턴건으로 심폐소생을 시도해 살려내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연성보다 감정적 설득력이 앞선 경우라고 할까요.
뮤리엘의 의식 현장을 급습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헨젤의 강화 샷건, 미나의 게틀링 기관총, 벤이 숲속 나무 사이에 설치한 와이어 트랩, 그레텔의 석궁과 쇠사슬이 동시에 가동되는 이 장면은 제가 직접 봐봤을 때 가장 박수를 치고 싶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사전에 성수(Holy Water)로 총탄을 축복해 마녀의 마법 방어를 무력화시키는 설정도 영리했습니다. 여기서 성수란 특정 종교적 의식을 통해 축성된 물로, 영화에서는 흑마법에 대항하는 주술 도구로 활용됩니다.
과자의 집 폐허에서의 뮤리엘 처단, 그리고 토미 위르콜라의 미학적 딜레마
결말부 과자의 집(Candy House) 폐허에서의 혈전은 이 영화의 서사를 집약합니다. 어린 시절 처음 마녀를 화로에 처넣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헨젤과 그레텔은 뮤리엘과 단둘이 마지막 싸움을 벌입니다. 문제는 헨젤의 당뇨병(Diabetes)이 하필 이 결정적인 순간에 재발한다는 점입니다. 당뇨병이란 인슐린 분비 부족 또는 저항성으로 혈당 조절이 어려워지는 대사질환으로, 영화에서는 마녀의 사탕을 강제로 먹인 결과로 설정됩니다. 교살 직전까지 갔다가 당뇨 발작으로 힘이 풀리는 헨젤, 그레텔의 인슐린 주사, 그리고 삽자루로 뮤리엘의 목을 참수하는 마무리는 잔혹하고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비장합니다. 제 경험상 이 장르에서 이 세 가지 감정을 동시에 유발하는 결말은 꽤 드뭅니다.
출처: Rotten Tomatoes에 따르면 이 영화의 평론가 지지율은 16%에 불과하지만, 관객 지지율은 47%로 평단과 관객 사이의 극명한 온도 차를 보여줍니다. 저는 이 수치가 이 영화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고 봤습니다. 서사적 완결성보다 장르적 쾌감에 집중한 영화라는 것을요.
토미 위르콜라 감독이 이 영화에서 이룬 가장 큰 성취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다크 판타지 미장센의 구축입니다. 하드보일드란 감정을 억제하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서사 스타일로, 원래 1930~40년대 미국 범죄 소설 장르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중세 숲의 눅눅한 질감, 아틀리 오르바르손(Atli Örvarsson)의 록 오케스트라 스코어, 스팀펑크 무기 디자인이 맞물리며 이 영화는 분명한 미학적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특히 숲속 야간 전투 시퀀스의 조명 설계는 예산 규모 대비 인상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지점도 결말에 있습니다. 전반부 내내 파고들던 헨젤의 고통과 단독자들의 비극적 고독은, 트롤 에드워드와 소년 팬 벤을 새 팀으로 합류시키는 유쾌한 사냥꾼 삼총사 출범 프레임으로 마무리됩니다. 출처: IMDb 자료를 보면 이 영화의 제작 예산은 약 5,000만 달러였고 전 세계 흥행은 2억 2,6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속편이 결국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 서사적 미완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레텔이 뮤리엘의 지팡이를 몰래 챙기는 마지막 장면이 속편 떡밥으로 남은 채로요.
자주 묻는 질문
Q.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원작 동화와 얼마나 다른가요?
A. 원작 그림 형제 동화의 기본 뼈대, 즉 아버지에게 버려진 남매가 과자의 집에서 마녀를 처치하는 설정은 유지됩니다. 다만 영화는 그 이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합니다. 남매가 성인이 되어 전문 마녀 사냥꾼이 되고, 중세 배경에 스팀펑크 무기가 등장하며, 어머니가 백마녀였다는 혈통 서사가 추가됩니다. 제가 직접 봐보니 원작 팬보다 액션 장르 팬에게 더 맞는 영화였습니다.
Q. 헨젤이 당뇨병에 걸린 이유가 뭔가요?
A. 어린 시절 마녀에게 잡혔을 때 살을 찌우기 위해 사탕을 강제로 과잉 섭취당한 결과로 설정됩니다. 영화 내내 헨젤은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사냥을 이어가는데, 이 설정이 마지막 결전에서 결정적인 위기 요소로 작동합니다. 단순한 캐릭터 특성이 아니라 서사 장치로 기능하는 구조라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Q. 트롤 에드워드는 왜 그레텔을 도와주나요?
A. 영화 안에서 에드워드는 "트롤은 마녀를 섬긴다"는 말을 남기는데, 결말까지 그 의미가 명확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레텔이 백마녀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트롤 본능적으로 반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영화가 이를 직접 서술하지 않아 개연성의 공백이 남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영화의 아쉬운 서사 구멍 중 하나라고 봤습니다.
Q. 속편이 제작될 가능성이 있나요?
A. 영화는 그레텔이 뮤리엘의 지팡이를 몰래 챙기는 장면으로 속편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마녀의 피를 이어받은 그레텔이 타락하거나, 반대로 타락을 극복하는 방향의 속편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2013년 개봉 이후 현재까지 속편 제작 소식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며, 제 판단으로는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입니다.
결론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은 완성도 높은 서사 영화라기보다,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 하드보일드 다크 판타지 액션에 가깝습니다. 부패한 공권력과 마녀 카르텔이 공모하는 구조, 혈통의 비밀로 완성되는 남매의 정체성, 그리고 뮤리엘 처단에 이르는 과정은 분명한 서사적 밀도를 가집니다. 하지만 결말이 유쾌한 속편 예고처럼 마무리되면서 전반부의 비극적 무게감이 다소 희석되는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게 되는 건,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긴 코트를 여미고 다음 표적을 향해 걷는 두 사람의 실루엣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궁금하다면 아나크로니즘 연출과 스팀펑크 미학에 주목하며 보시길 권합니다. 서사보다 미장센을 즐기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훨씬 만족스러운 경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