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트하다가 별 계획 없이 들어간 영화관에서 예상 밖으로 머릿속이 꽉 차는 영화를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게 이번 주였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기대도 정보도 없이 봤는데 집에 오는 내내 여자친구와 이러쿵저러쿵 떠들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풍자와 알레고리로 쌓아올린 영화의 구조
이 영화를 두고 "단순한 액션 추격극"이라고 보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보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꽤 빨리 눈치챘습니다. 문제는 그게 뭔지를 명확히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거였고요.
이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코인텔프로(COINTELPRO)입니다. 코인텔프로란 FBI가 1956년부터 1971년까지 운영한 급진 세력 무력화 프로그램으로, 좌파·흑인 해방운동·반전 단체를 표적으로 삼아 감시, 침투, 와해 공작을 벌인 정보 공작 프로그램입니다. 영화 속에서 퍼피디아가 체포 후 동료를 밀고하는 흐름은 바로 이 코인텔프로 방식의 현실적 묘사였습니다. 당시 백인 여성 급진주의자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흑인 여성은 인종과 성별이라는 이중 낙인 아래 가혹한 중형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출처: FBI 공식 역사 자료 아카이브).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라는 조직은 알레고리(allegory), 즉 사회적 실체를 은유적 허구로 치환하는 서사 기법을 통해 실제 미국 권력층의 비밀 사교 모임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이 조직의 입회 조건에는 유색 인종이 아닐 것, 유대인이 아닌 미국인 가정 출신일 것이라는 조항이 명시되는데, 이는 백인 우월주의의 제도적 형태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설정입니다. 67년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을 위헌으로 확정한 러빙 대 버지니아(Loving v. Virginia) 판결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인종 간 결혼과 성관계까지 금지되어 있었고, 그 역사의 잔재를 제도화한 집단이라는 의미로 읽힙니다(출처: 미국 연방대법원 공식 판례).
영화가 설정한 가상 도시 박탄 크로스도 흥미로웠습니다.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전체를 압축했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현실 정치 논쟁과 거리를 두는 안전장치 역할도 합니다. 저는 이 선택이 상당히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핵심 서사 장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렌치 75의 조직명: 1차 세계대전 무기에서 따온 이름으로 무력 저항을 상징
- 코인텔프로 코드: FBI의 실제 급진 세력 와해 공작을 영화 속 배신 서사에 반영
-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백인 우월주의 사교 집단을 알레고리로 치환
- 60년대 시트콤 암호: 주류 미디어의 가짜 현실을 비트는 풍자적 장치
온도 차이 : 한국인 관객으로서 느낀 영화의 진짜 메시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재밌다"는 느낌과 "완전히 와닿는다"는 느낌 사이에 묘한 거리를 느꼈습니다. 미국 정서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 영화인지를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이민자 구금 문제나 인종 차별 이슈를 두고 "크게 공감된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그 문제를 피부로 겪어본 적이 없으니 영화가 촉발하려는 감정적 충격이 절반쯤은 희석되어 들어왔습니다. 미국 이민국(ICE,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에서 타국 이민자를 강제 추방하는 뉴스를 접해도 크게 와닿지 않는 것처럼, 영화의 분노도 그 맥락을 모르면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ICE란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 법집행 기관으로, 이민법 위반자 단속과 추방을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은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퍼피디아가 임신 이후에도 "난 모유 만드는 기계가 아니야, 혁명을 할 거야"라고 선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타인이 기대하는 역할을 거부하고 자기 의지로 행동하겠다는 태도는,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이를 두고 떠난다는 선택 자체에 동의한다는 게 아닙니다. 억지로 원하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타인의 기대에 맞추다 보면, 오히려 그 관계가 더 공허해진다는 걸 제 경험상 압니다. 자신에게 솔직한 상태에서 나오는 진심이 결국 관계에서도 오래 가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이 영화의 장르적 질감이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극한의 긴장감이 이어지다가, 무술 사범 세르지오 센세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분명 웃음 코드가 있는데 배우가 너무 진지하게 연기해서 "이게 코미디 맞나?" 싶은 순간이 반복됩니다. 이 묘한 긴장감이 바로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의 특성인데, 블랙 코미디란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비극적 상황을 웃음으로 포장하면서 오히려 더 강한 풍자 효과를 내는 장르 기법을 말합니다. 요즘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영화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결입니다. 제가 직접 봐서 느낀 건데, 이 색다름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더라고요.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거창한 혁명보다 가까운 관계에서의 헌신이 더 강력하다는 것일 겁니다. 데이트 나온 저와 여자친구는 평화롭게 팝콘을 먹고 있었지만, 영화 속 누군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도망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권력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부패를 선택하고 있었죠. 그 대비가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팝콘 영화로 가볍게 보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어렵거나 거만한 영화도 아닙니다. 미국 정치·역사 맥락을 다 알고 보면 분명 더 진하게 느껴지겠지만, 몰라도 "이건 뭔가 다른 영화다"라는 감각은 충분히 전달됩니다.
번아웃 공감 : 디카프리오의 너덜너덜한 모습이 왜 남 얘기 같지 않았냐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초반에 세련된 복장으로 등장하던 밥이, 시간이 지날수록 수염 정리도 안 되고 옷도 후줄근해지는 장면입니다. 처음엔 그냥 연출상 장치겠거니 했는데, 보다 보니 제가 다니는 회사 얘기 같아서 멈칫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하다 보면 3개월, 6개월, 9개월, 3년차, 6년차, 9년차 이런 시점마다 번아웃(Burnout)이 찾아옵니다. 번아웃이란 업무 스트레스가 만성화되어 신체적·정서적·정신적으로 소진된 상태를 말하는데,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직업 관련 현상으로 공식 분류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처음엔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있다가도, 어느 순간 뭘 위해 이걸 하고 있나 싶은 순간이 옵니다. 디카프리오의 외형 변화가 딱 그 과정을 시각화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밥이 딸 윌라를 구하기 위해 다시 몸을 일으키는 장면은, 번아웃이 왔어도 다시 주먹 불끈 쥐고 일터로 나가는 한국 직장인의 모습과 이상하게 겹쳤습니다. 거창한 이념이나 혁명적 선언 없이, 그냥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게 제가 본 밥의 진짜 혁명이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직장인의 번아웃 경험 비율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조직 구조의 문제라는 분석이 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이 영화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게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권력 구조, 소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통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 모든 층위를 억지스럽지 않게 쌓아 올립니다. 카메라는 클로즈업을 영화의 풍경처럼 활용하고,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이야기의 예측 불가능한 흐름을 더욱 증폭시켜 줍니다. 저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이렇게 다층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아낸 영화를 최근엔 본 기억이 없습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도 생각이 이어지는 영화라면, 그 자체로 충분히 볼 이유가 됩니다.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영화가 그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