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에서 박수가 터진 한국 영화가 몇 편이나 됩니까. 제가 직접 보고 나서 손을 쳤을 때, 옆 사람들도 치고 있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런 영화였습니다.
디스토피아, 무너진 서울 - 살아남은 아파트 한 동
이 영화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대지진으로 서울의 모든 건물이 붕괴되고, 황궁 아파트 단 한 동만 남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몰려들고, 입주민들은 외부인을 막기 시작합니다. 디스토피아(dystopia)란 이상향의 반대 개념으로, 사회 붕괴나 전체주의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된 세계를 묘사하는 장르적 개념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디스토피아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 '내 집'에 대한 집착이라는 아주 토착적인 소재를 끌어들입니다.
제가 직접 봐서 느낀 건, 오프닝부터 예사롭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첫 장면은 흑백 화면으로 시작하다가 점차 선명한 색감으로 전환됩니다. 이 기법은 관객의 시각 기준점을 낮춰놓은 다음 CG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질감을 지우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 용어로는 시각적 동화(visual assimilation)라 부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관객 눈이 화면에 적응하게 만든 뒤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특수효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오프닝 3분 만에 저는 이미 감독의 설계에 감탄했습니다.
원작은 웹툰 유쾌한 왕따로, 1부는 학교 폭력을 다루다가 2부에서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확장됩니다. 영화는 이 2부 파트를 바탕으로 했는데, 원작 팬으로서 솔직히 걱정이 컸습니다. 웹툰의 감각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이병헌의 영탁, 박보영의 명화 — 캐릭터가 관객을 분열시키는 영화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이병헌이 연기한 영탁이 점점 권력에 물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이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리더의 개인적 자질을 뜻하는 개념인데, 영탁은 처음에 이 카리스마로 입주민들을 결집시킵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 순간 폭력적 권위로 변질된다는 점입니다. 저도 그 과정을 보면서 "나라도 내 집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게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입니다.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는 끝까지 도덕적 원칙을 놓지 않는 인물입니다. 아포칼립스(apocalypse), 즉 문명이 완전히 붕괴된 종말 상황에서도 그녀는 외부인을 돕고, 거짓에 저항합니다. 여기서 아포칼립스란 단순히 재난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질서와 법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그 원칙이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을 반복적으로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명화가 등장할 때마다 "저러다 민성이 죽겠다"는 불안이 쌓였고,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됩니다.
이 영화를 보고 여자친구와 밤새 이야기한 주제가 바로 여기였습니다. "너라면 명화처럼 살았겠어, 아니면 타협했겠어?" 정답이 없는 질문인데, 그래서 두 시간 넘게 싸우다가 결론을 못 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관객 반응이 갈리는 핵심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병헌(영탁): 악역이지만 공감이 가는 괴물. "나도 저럴 수 있다"는 자기 투영이 작동함
- 박보영(명화): 도덕적으로 옳지만 현실에서는 민성을 희생시키는 존재
- 혜원: 진실을 폭로했지만 그 진실이 황궁 아파트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끄는 촉매가 됨
심리학에서는 이런 반응을 도덕적 딜레마(moral dilemma)라고 부릅니다. 도덕적 딜레마란 어떤 선택을 해도 윤리적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하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딜레마를 캐릭터 각각에 심어놓아 관객이 누구 편에도 완전히 설 수 없게 만듭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관람 후기 : 한국 영화가 이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제가 오랫동안 한국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은 그 감각입니다. 엄태화 감독의 전작인 잉투기나 가려진 시간을 봤을 때는 솔직히 이런 영화를 만들 분이라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나서 "저 감독이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 선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음악의 역할을 내러티브 강화(narrative reinforcement)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내러티브 강화란 음악이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넘어 이야기의 감정적 흐름을 끌고 가는 기능을 뜻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그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합니다. 제가 직접 들으면서 여섯 곡 이상을 따로 찾아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단점을 굳이 하나 꼽자면 엔딩부 서사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감독보다는 배급사 쪽에서 손을 댄 흔적처럼 보입니다. 영화 내내 완벽하게 쌓아 올린 서사가 마지막 10분에서 약간 힘을 잃는 느낌이었습니다. 2023년 한국 영화 관객 수는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보이며 약 1억 2천만 명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 회복장의 중심에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있었다는 건, 수치 이전에 극장 안에 있던 저도 몸으로 느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닙니다. '내 집'이라는 욕망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15분은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스포 없이 극장에 가셔도 충분히 깊이 들어가는 영화이니, 가능하면 대화 나눌 사람과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끝나고 두 시간은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